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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겨울 나무
[칼럼]겨울 나무
[선데이뉴스신문=홍성민 칼럼]2019년 올해도 이제 한 장의 달력만이 남았다. 어제가 새해인 것 같은 데 벌써 연말이 다가왔다. 한 해를 어떻게 매듭짓고 마무리 하는가 이것도 중대한 우리의 관심사이다. 나무들은 나이테를 통해서 또 한 해를 살아온 것을, 성장한 것을 내면에 흔적으로 기념한다. 우리 인간은 그러면 어떻게 마무리해야 나무처럼 존재 가치를 가질 수 있을까. 이것을 생각해 보려고 한다. 추운 겨울이 오면 모든 만물은 잠이 든다. 나무(나無)는 이름 그대로 나는 없으니 옷을 벗는다. 그리고 자신의 가늘고 초라한 속살을 다 드러낸다. 정직한 나무의 모습이 처량하다. 이처럼 우리도 정직하게 한 해를 자기 성찰로 마무리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 자신을 주님 앞에 다 드러내고 잘한 것은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 모든 잘못은 다 십자가의 은총으로 용서해 주옵소서 하면서 한 해를 마무리한다면 우리도 나무처럼 옷을 벗는 것이리라. 나무가 진정 나무다워지는 계절이 겨울이다. 겨울에 눈이 내리면 나뭇 가지는 하이얀 눈꽃을 피운다. 마치 하늘에서 고난을 이겨내는 나무에게 깨달음의 빛을 선사하는 듯하다. 우리도 고난을 인내로 맞이하는 나무를 본받아야 하지않을까. 우리도 나무처럼 주님의 십자가를 기쁘게 인내로 감당하는 자세로 살겠다는 다짐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나무는 겨울에 잎도 꽃도 열매도 다 나눠주고 홀로 남았다. 욕심도 영광도 다 버린 자리에 눈꽃이 비로소 빛으로 피어오른다. 우리도 나무처럼 자아도 욕망도 자랑도 다 버릴 때 진리의 빛, 사랑의 빛으로 탄생하지 않을까. 고난의 아픔을 깨달음의 빛으로 승화한 자리에 하늘은 눈물로 아픈 자리를 감싸주고 있다. 우리도 이처럼 고난의 아픔을 그리스도로 승화해야 하지 않을까. 나무는 겨울 밤을, 어두운 세상을, 고난의 시절을, 캄캄한 밤을 인내로 견디고 살아간다. 결국 나무는 하늘의 하얀 빛으로 옷을 갈아 입는다. 그대의 날들이 아름다왔다고, 그대의 가슴이 순수했다고, 그대의 꿈이 간절했었다고 그렇게 그렇게 또 하늘은 칭찬의 옷을 덮어주었다. 이제 우리도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할 시간이다. 이제는 누구를 손가락질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거울로 바라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겨울은 안식의 계절이다. 인간도 안식을 해야 또 새 해를 잘 맞이할 수 있다. 복잡한 생각도 마음도 다 주님께 내려 보내고 다시 새 날을 준비하는 평온한 가슴을 가졌으면 한다. 그래야 희망찬 새로운 태양의 빛이 가슴 속에 뜨겁고 아름답게 떠오를 것이다. 죄악과 욕심을 비워야 안식이 찾아온다. 교만과 어리석음을 버려야 안식이 온다. 오직 감사와 사랑만이 안식이 온다. 그러나 진정한 안식은 죄악을 회개할 때와 원수를 용서할 때 가슴 속에 찾아 온다. 땅에서 매인 것은 땅에서 풀어야 한다. 하늘에서 매인 것은 하늘의 은총으로 풀어야 한다. 이 잘못 된 매듭이 풀려야 자유를 얻을 수 있다. 그래야 참 안식에 이르게 된다. 겨울 나무는 바로 이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기 위해 겨울을 그렇게 또 그렇게 아픔 속에서 눈물로 견디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한 해를 보내는 연말이다. 겨울나무의 삶을 이제 우리가 살아가야 할 때이다. 홍성민/컬럼시인(교육학원론 저자)
[칼럼]행복을 찾아 떠나는 나그네
[칼럼]행복을 찾아 떠나는 나그네
[선데이뉴스신문=홍성민 칼럼]인생을 한 마디로 말하면 무어라 말할 수 있을까. 아마도 누구나 자기만의 독특한 취향의 행복을 찾아 떠도는 나그네가 아닐까 싶다. 오늘 저녁 서울에서 인천으로 오는 전철 안에서 예쁘장한 두 청춘 남녀가 사람들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가볍게 끌어안고 이마에 키스하고 귓속말로 속삭이는 귀여운 모습을 보았다. 저들의 모습을 보면 사랑할 대상이 있고 의지할 대상이 있고 서로의 기쁨을 나눌 대상이 있으니 참으로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마도 저들에게는 우리에게는 영원할 것 같은 꿈과 희망이 가득할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랑의 유효기간이 삼년 이라는 이론이 있다. 이 사랑도 결혼 이전과 결혼 이후의 삶은 또 다를 것이다. 이 청춘 남녀 옆에 한 어른이 있었는데 그 분은 어디가 아픈지 아니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지 찡그린 얼굴에 짜증난 표정을 보면서 이 청춘 남녀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쪽은 행복에 겨워서 어쩔 줄을 모르고 한쪽은 괴로워서 당장 누군가에게 화풀이라도 할 그런 표정으로 있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무심하게 자기의 일들 대부분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인생은 행복이냐 아니면 짜증난 인생이냐 아니면 무심한 인생을 사느냐의 세 갈래로 구분되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모든 인생은 누구나 행복하기를 원한다. 그런데 그 행복이 자기에게 쉽게 다가오지 않기 때문에 고뇌와 슬픔의 인생을 사는 것이다. 행복은 누구나 원하지만 그렇게 쉽게 잡히지 않는 행복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고 한다. 이제 대략 육십년을 살다보니 행복이 무엇인지 어렴풋하게 아는 때가 온 것 같다. 책으로 경험으로 명상으로 오랫동안 행복을 생각해 보니 행복이 뭔지 깨달아지는 것이 있다. 행복에는 네 가지가 있다. 하나는 채우는 행복, 둘은 비우는 행복, 셋은 깨닫는 행복, 끝으로 행하면서 완성되는 온전한 행복이다. 먼저 채우는 행복이 행복의 시작이다. 돈이 있어야하고 건강이 있어야하고 지식이 있어야 행복의 기초가 이루어진다. 돈과 건강과 지식이 없이는 사회에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다. 이 기초적인 요구가 채워져야 기본적인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추가하면 자신의 재능을 채워야 행복하다. 이러한 기본을 채우지 않고 행복할 수는 없다. 먹고 사는 문제가 시급한 후진국에서 행복이야기는 무의미하다. 두 번째는 비우는 행복이다. 많은 사람들이 채우는 행복에는 열중하지만 비우는 행복에는 아직 배우지를 못한 것 같다. 인간은 욕심을 비우고, 집착을 비우고 자아를 비워야 행복해 질 수 있다. 붓다는 그래서 인생의 문제를 욕심, 분노, 어리석음 이 세 가지로 보았다. 인생이 욕심과 분노와 어리석음이 오는 것은 내 안의 욕심을 비우지 못해서 오는 것이다. 있는 것으로 자족하고 감사의 인생을 살려면 내 안의 욕망을 비울 때 가능하다. 행복은 비워야 오는 것이다. 세 번째 행복은 깨닫는 행복이다. 임종이 가까운 사람들에게 물어봤다. 당신이 가장 행복할 때가 언제였나요? 물었더니 대다수가 인생의 의미를 깨달았을 때라고 말했다. 필자가 삼십대 시절 마땅한 직업이 없어서 영업을 할 때가 있었다. 마침 동창을 만났다. 그에게 나는 “이 치약 좀 사줘라 그러면 너는 복 받을 거야” 이 말을 했더니 친구가 하는 말이 “너 이런 식으로 영업하지 그래가지고 물건이 팔리겠니.” 하더니 물건도 안 사주고 그냥 갔다. 그 때 필자는 그 말을 듣고 어찌나 창피하던지 아 맞아 내가 영업을 해야 하는데 엉뚱한 말로 영업을 하니 장사가 될 수가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어리석은 추억이 있었다. 행복은 인간과 인생에 대해서 자신과 진리에 대해서 깨달아야 지혜로운 인생을 살 수 있다. 학문을 배우고 독서를 하며 경전을 탐구하는 이유는 인생과 자신을 진리의 눈으로 발견하여 지혜롭게 살기 위한 것이다. 물론 경전은 영생을 얻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짐승이냐 인간이냐 성인이냐의 삶의 구분은 내가 어느 단계에서 깨달음을 얻었느냐에 달려 있다. 깨닫지 못하면 짐승처럼 산다. 마지막은 온전한 행복이다. 온전한 행복은 모든 종교가 추구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진리 안에서 자유로운 인생이 있고, 내면의 영혼이 신과 일체가 되어 영원한 사랑의 존재이며 영광의 실체인 성화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다가 자신의 재능을 완성하여 인류에 봉사하는 사명을 감당할 때 인간은 온전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이것이 진정한 행복의 자리이다. 이것이 종교가 원하는 영원한 행복의 진리이다. 기본적인 것은 채워야 한다. 그러나 어느 정도 채웠으면 이젠 비울 수 있어야 한다. 비웠다면 깨달아야 참 인생을 살 수 있다. 깨달은 자가 마침내 진리의 실체로서 참 인생을 살 때 영원한 행복이 안팎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기본을 채우고, 탐욕을 비우고, 진리를 깨닫고, 사랑의 실체가 되어 온전한 행복을 누리며 인생을 멋지게 걷고 싶지 않으십니까. 행복이란 무엇입니까. 채우고 비우면서 진리를 깨달아 사랑으로 영원한 생명의 길을 걷는 것 이것이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요. ‘고난이 오기 전까지는 자신이 가진 행복이 얼마나 큰지 아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 ‘돈과 지위 욕망의 행복은 갈증해소를 위해 계속해서 바닷물을 마시는 것과 같다’ 오늘부터 참 행복을 찾아 떠나는 멋진 여행길 함께 누려보는 것은 어떠할는지요. 감사합니다. 홍성민/컬럼시인(교육학원론 저자)
[강충인 칼럼]4차 산업혁명시대 미래교육방향
[강충인 칼럼]4차 산업혁명시대 미래교육방향
[선데이뉴스신문=강충인 칼럼]급변하는 4차 산업혁명시대는 빅데이터에 의하여 정보가 창출되는 시대이다. 개인이나 기업, 국가의 경쟁력이 빅데이터에 의하여 결정된다. 3차 산업혁명시대까지는 교과서 중심교육으로 정보를 교류했다면 4차 산업혁명은 인터넷을 통한 오픈소스(open source)에 의한 정보에 의하여 경쟁력을 창출해야 한다. 따라서 교육방법을 바꾸지 못하면 미래인재로 성장할 수가 없다. 오픈소스(open source)는 방대한 지구촌 정보를 누구나 수집하고 분석하여 자기 정보로 가공할 수 있는 시대이다. 교수나 교사에 의하여 정보를 학습 받던 시대는 지났다. 교수나 교사가 정보를 제공하던 입장에서 정보에 대한 멘토로 바뀌었다. 하버드, 스텐퍼드. 옥스퍼드, 에꼴42 등의 세계 명문 대학의 교육방식을 바꾼 이유가 오픈소스(open source)에 의한 시대변화 때문이다. 누구나 원하는 정보를 인터넷을 통해서 무한 수집할 수 있는 시대에서 교육방법이 바뀌는 것은 당연하다. 일방적인 정보전달방식과 하나의 답을 평가하던 시험제도에서는 미래인재를 발굴하고 육성하기 어렵다. 빅데이터를 이용한 프로젝트수업이 세계 명문대학에서 진행되고 있다. 학생들이 문제를 선택하여 스스로 역할을 나누어 문제를 관찰하고 분석하며 대화와 토론으로 해결하는 체험과 경험의 교육이 빅데이터를 응용하고 활용하는 능력을 키운다. 미래교육은 오픈소스(open source)에 의한 교육방법으로 바뀌어야 하고 교수나 교사는 멘토의 역할로 바뀌어야 한다. 프로젝트 수업에 의한 정보수집과 분석방법을 가르쳐야 한다. 서로 다른 생각을 대화와 토론으로 시너지를 만들어 가는 학습방법은 암기교육에서 이해교육으로 바뀌어야만 한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 미래포럼은 급변하는 학습 환경에 따라 STEAM-Maker교육방식으로 미래교육환경에 대비하고 있다. Maker교육은 학습정보를 서로 공유하면서 선진국가 교육사례를 국제 컨퍼런스를 통해 공유함으로 미래교육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암기교육방식에서 이해교육방식으로 바꾸면서 사고력을 키우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시대의 빅데이터는 필요한 정보를 전 세계에서 수집하여 학생들이 대화와 토론으로 정보를 분석함으로 필요한 정보로 가공하는 시대이다. 교수나 교사보다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함으로 교수나 교사는 학생들이 수집한 정보가치를 분석하고 연구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멘토와 함께 정보수집과 분석을 하는 것이다. 미래교육은 과거와 다르다. 교수, 교사중심교육에서 학생중심 활동교육으로 바뀌었다. 공개된 정보를 어디서 어떻게 수집하고 분석하는가의 체험과 경험의 실생활중심교육이다. 시험으로 평가하는 교육은 사라졌다. 스스로 문제를 이해하고 풀어서 각자의 생각을 만들어 내는 교육이다. 교육을 통해 창업이나 회사에 기여하는 방법을 습득한다. 미래교육은 각자가 지니고 있는 잠재적 창의성을 바탕으로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창의력교육이다. 창의성은 누구나 다르게 지니고 있으나 체험과 경험에 의하여 창의력으로 창출된다. 다양한 생각과 행동(창작실험)에 의하여 창의력이 된다. 따라서 각기 다른 창의성은 창의력으로 창출시키는 체험과 경험의 다양한 교육을 키우는 STEAM(융합)교육과 MAKER(체험)교육방식이 세계적으로 실시되고 있다. /강충인 미래교육자
[기고] 우리 교육제도로는 국가 미래 없다
[기고] 우리 교육제도로는 국가 미래 없다
[기고-교육] 올해 노벨경제학상의 키워드는 빈곤 퇴치의 해법이다. 빈곤 퇴치의 유일한 길은 `헝그리 복서(hungry boxer)`처럼 뜨거운 교육열이다. 특히 지식사회로 진입하면서 교육이 가장 효과적인 빈곤 퇴치 해법이란 주제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는 것은 시대적인 필연이다. 우리나라의 가장 확실한 자원은 바로 우수한 두뇌다.그런 점에서 교육제도 혁신은 특히 우리에게 아주 절실한 문제다. 유대인들은 빈곤 퇴치보다 국가 존립을 위해서 교육제일주의를 추구해왔다. 지금까지 노벨 과학 분야 수상자를 제일 많이 배출했고, 실리콘밸리 창업의 50% 이상이 그들인 것만 봐도, 유대인들 교육제도는 지식사회의 가장 모범적인 제도다. 그 뿌리인 창의성 개발의 근본 바탕은 무엇일까? 역사를 돌이켜보면 적극적인 삶을 통해서 탄생한 위대한 업적들은 대부분이 질문 능력에서 배양되었다. 자기 내면으로 던지는 질문은 자신의 창의적 사고를, 타인에게 던지는 질문은 타인의 창의적 사고를 자극해서 결국 호모사피엔스, 즉 `생각하는 동물`인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의 원동력이 됐다. 불행하게도 우리 아이들의 교실에서는 질문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질문하는 법을 가르치기보다는 정답을 빠르게 찾는 학습법이 우선시되고, 깊은 생각을 장려하기보다는 빠르고 감각적인 것에 무게를 두는 교육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이것이 우리 학생들의 학습 흥미도를 낮게 만들고, 이로 인해 노벨상 수상자 배출이 어렵고, 우리 사회에 토론과 타협보다는 대립과 갈등이 만연하게 되는 기본 바탕이 되고 있다. 필자는 오래전부터 외국의 노벨상 수상자들을 만날 기회가 많았다. 그들과 대화하며 느낀 점은 그들이 마치 어린아이와 같이 천진난만하다는 사실이었다. 호기심이 많고, 세상에 대한 감탄 어린 시선으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아이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스라엘의 교육은 아이 같은 심성과 창의적 사고를 키우는, 아이들이 찬성과 반대 의견을 서로 교환하고 토론함으로써 스스로 창의성을 개발하는 `자율 학습 동아리` 방식이다. 우리 교육 개혁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우리 아이들의 잃어버린 호기심과 질문에 대한 본능을 되살리는 데 두어야 한다. 그 기본 바탕은 철저한 자율성에 따른 다양한 창의적 질문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교육 제도는 어떤가? 대통령이 직접 대입 정시 확대를 발표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정책들이 장관과 교육감을 통해서 발표되고 있다. 특목고, 자사고, 과학고 등 다양한 창의적 교육은 단계적으로 말살하고, 획일적으로 하향 평준화하는 것이 우리 교육제도의 현실이다. 유대인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신장하는 교육제도와는 철저하게 반대되는 입장이다. 오늘날 세계를 휩쓸고 있는 K팝이나 세계 일류에 오른 여성 골프의 실력은 정부의 간섭과 우리 교육제도를 벗어났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 나라의 미래는 그 나라 어린이의 창의력이라고 한다. 현재 우리 교육제도하의 어린이를 보면 국가 미래는 암담하다. 지식사회의 국가 미래를 위해, 우리 아이들이 소크라테스와 다윈 같은 성장촉진호르몬성 질문을 할 수 있는 교육제도로 긴급히 개혁해야 한다. [이상희 헌정회 국가과학기술 헌정자문회의 의장]
[기고] 국가 위기 대처 방안과 주력산업 육성
[기고] 국가 위기 대처 방안과 주력산업 육성
[기고문] 최근 국가경제는 연속 하락국면이다. 글로벌경제시대에, 반도체등을 둘러싼 정밀화학, 정밀소재, 정밀기계 등은 일본에 발목이 잡혔고, 자동차등 거대 제조업은 중국의 중공업과 중화학 때문에 중국에 계속 밀릴 수 밖에 없다. 차제에 새로운 국가주력산업을 집중육성시켜야 한다. 핀란드는 국가경제의 65%를 점유하던 세계적 기업 노키아가 침몰할 때 오히려 새로운 도약의 전기를 마련했다. 즉 산업사회의 거대 공룡기업구조에서 지식사회의 미생물 전문기업 구조로 국가산업체질을 바꾸었다. 핀란드 정부는 국가예산을 노키아 갱생을 위한 자금으로 낭비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예산을 투입해서 노키아 내의 전문기술과 인력을 활용하여, 3500개 이상의 젊은 전문창업을 유도했다. 그로 인해 핀란드 산업체질은 오늘날 미생물전문기업의 산업체질로 탈바꿈해서 오히려 국가경쟁력이 한층 강화되었다. 우리에게도 차제에 국가 산업체질을 바꾸어야 한다. 오늘날 노령화질환과 환경오염질환의 증가 추세로, 바이오산업이 고부가가치 성장산업으로 부상하고 있다. 거대 해양음기와 거대 대륙양기가 교감하는 우리 금수강산 한반도는 생명에너지가 충만하기 때문에 탁월한 약초생산지가 될 수 있다. 고대 중국 황실이 우리에게 비단을 주고, 반대로 고려산삼을 가장 선호했던 역사적 사실이 중국은 제조업, 우리는 바이오산업으로 서로 보완적 관계임을 입증하고 있다. 오늘의 한·일무역 갈등에 좌절하지 말고, 핀란드처럼 우리의 주력산업 체질을 적극 육성해야 한다. 그래서 얼마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언론 특별 인터뷰를 통해서 바이오 헬스산업을 제2 반도체로 육성하겠다는 정책 의지를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 시기에는 국민이 공감할 정책적 후속조치가 필요하다. 우리 정부는 일본 강경대응의 정책 의지표명도 중요하지만, 국민에게 감성적으로 실감나는 장려정책을 표명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국민보험제도 속의 징벌적 의료보건관련법과 조세법 때문에 바이오산업 분야에서 열심히 경영과 연구에 몰두하다가 치열한 시장경쟁으로 인해 본의아니게 업무적 과실을 범해 현재 감옥살이를 하거나, 과도한 벌금형이 확정된 경영자와 연구자들이 있다. 이들을 가령 국경일에 특별사면대상으로 조치발표했으면 한다. 그리고 오늘날 한·일경제 패권전쟁에서,이번에 특별사면된 바이오 전문 인력들이 바이오산업육성의 소위 ‘장발장’이 되어달라는 당부를, 특별사면담화문에 담아 발표하면 좋겠다. 그러면 우리 바이오산업 육성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의지도 표명하게 되고, 바이오산업 자체에도 큰 활력이 될 것이다. 더불어 우리 정부의 이 같은 정책적 결단이 산업정책 차원에서도 절실한 현실하다. 우리의 바이오산업 현실을 면밀히 점검해보면 실제로 바이오산업 육성 정책은 없고, 곳곳에 규제정책만 도사리고 있다. 이 분야는 특별히 R&D가 절실한 분야인데, 연구개발의 속성인 Risk & Danger 즉 모험과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행정과 정책은 아예 찾기 어렵다. 중국 진시황이 불로초 탐색대를 제주도까지 파견했던 우리 한반도에는 바이오적 토양과 기후 특성 때문에 태생적으로 산삼 같은 최우수 바이오 약초가 생존하고 있다. 차제에 국가적 결단으로 보신주의적 행정을 과감하게 혁신시키고, 우리 국토의 바이오산업 잠재력을 적극적으로 개발하면 소위 ‘바이오거북선’이 개발될 것이다. 이제부터 우리 경제를 교란시키는 침략세력들을 임진왜란의 성웅 이순신 장군처럼 슬기롭게 대처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일본산업의 실체도 정확히 알고, 우리 산업실태와 잠재적 성장 강점도 정확히 파악해 이순신 장군처럼 필승전략을 냉철히 점검하고, 새롭게 수립할 필요가 있다. 이 같은 차원에서 이번 한·일무역 갈등이 오히려 우리의 산업개혁의 활력소가 돼 바이오산업 강국의 역사적 시발점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