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로 이용웅 칼럼]북한축구와 김일성경기장, 2007~8년&2019년 축구예선

기사입력 2019.10.15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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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김일성경기장-2017년 4월 7일-남북한 여자축구 아시안컵 예선전.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북한 김일성경기장은 평양직할시 모란봉구역 개선동의 모란봉 아래 있는 야외 종합체육경기장으로 1926년 평양부청 주도로 건설되었습니다. 초기 기림리공설운동장, 평양공설운동장 등으로 불리었고, 광복 이전에는 야구장으로도 사용되었습니다. 1945년 김일성이 평양으로 처음 들어와 연설을 한 곳이기도 합니다. 1969년부터 관람석과 기본시설을 갖추고 모란봉경기장으로 불렸습니다. 당시 모란봉경기장의 수용능력은 5만 명이었으나, 1982년 김일성의 70회 생일을 기념하기 위하여 1981년 10월 20일에 착공하여 1982년 4월 10일 규모를 대폭 확장하여 개축하면서 경기장 명칭도 김일성경기장으로 바뀌었습니다. 현재 경기장 연건축면적은 146,000㎡이고 운동장 면적은 20,300㎡으로 총수용 인원은 10만 명입니다.

 

 

 

 

북한에서 발행된 <조선의 집단체조>에는 “김일성경기장은 풍치 수려한 평양의 모란봉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이전에는 모란봉경기장이라고 하였다. 조선식집단체조의 원형작품인《로동당시대》의 공연이 있은 곳도 이곳이였다. 이 경기장은 1960년, 1977년, 1982년 세 차례에 걸쳐 개건확장공사를 통하여 오늘과 같은 모습으로 변모되였다. 조선에서는 주요 국가적 명절 때 마다 집단체조를 하는 것이 관례화되였는데 그 무대는 대체로 김일성경기장”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 등이 ‘릉라도 5월1일경기장’에서 열립니다.

 

지금의 김일성경기장은 2006년 10월 9일 개건, 준공되었습니다. 이날 최룡해는 준공사를 통해 "로동당의 체육강국 건설 구상에 따라 개건된 김일성경기장은 김정은 동지의 직접적인 발기와 정력적인 령도에 의해 로동당 시대의 기념비적 건축물로 훌륭히 세워진 인민의 체육전당"이라고 했습니다. 김정일 시대에 이미 ‘김정은 우상화’가 존재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 축구는 김정일에 의해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過言)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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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김일성경기장-2019년 10월 14일-한국 남자축구 대표팀 연습 장면.

 

1989년 6월 2일 김정일은 “체육을 발전시킬데 대하여(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책임일군들과 한 담화)”에서 “당에서는 우리 나라를 <체육의 왕국>으로 만들어 우리 선수들이 세계체육무대에서 패권을 쥐게 할 결심을 하고 체육을 발전시키기 위한 여러 가지 조치를 취하였습니다...오늘 우리 선수들이 새로 건설한 양각도축구경기장에서 첫 경기를 잘 하였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훌륭한 경기장들을 건설한 것은 잘한 일입니다. 우리는 체육사업에 큰 힘을 넣어 나라의 체육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하겠습니다. 체육에서는 축구가 기본입니다. 축구는 우리 나라 사람들의 체질에도 맞습니다.”라고 했습니다.

 

 

 

 

 

2017년 4월 7일, 윤덕여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여자축구대표팀은 오후 3시 30분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킥오프한 북한과의 2018 여자아시안컵 예선 B조 2차전에서 후반 31분 장슬기의 동점골로 북한과 극적인 1:1 무승부를 거뒀습니다. 여자대표팀은 5만 명의 관중이 가득찬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북한 팬들이 홈팀을 일방적으로 응원하는 상황에서 경기를 치렀습니다. 이날 김일성경기장에 태극기가 게양되었고, 애국가가 울려 퍼졌습니다.

 

그런데, 남북은 지난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 무려 두 번이나 같은 조에 편성되었습니다. 2007년 3차 예선과 2008년 최종예선에서 연달아 만난 것입니다. 하지만 북한은 평양 홈경기를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당시 김일성경기장에서 태극기를 게양하고 애국가를 울리게 할 수 없다는 명분을 내세웠습니다. 북한에선 두 번의 홈 경기 장소로 평안남도에서 가까운 중국 선양을 제시했으나 결국 중국의 상하이로 낙점됐습니다. 두 번의 남북대결 모두 북한의 홈 경기가 상하이 홍커우 경기장에서 치러졌습니다. 남북대결 국내 경기는 모두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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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김일성경기장-2019년 10월 15일-한국 남자축구 대표팀 경기(對 북한 팀)

 

북한 축구협회는 2008년 서울 경기에 대해 성명을 발표했는데, “명백한 것은 리명박 패당이 벌리고 있는 반통일적이고 반민족적인 반공화국대결책동이 고상한 스포츠의 리념을 우롱하는 무법무도한 행위로까지 번져졌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기 민족도 그리고 스포츠의 리념도 모르고 온갖 못된 짓을 다하고 있는 리명박 패당의 처사를 반통일적이며 반민족적인 반공화국대결책동으로 엄중히 단죄하며 남조선당국이 이번 비상사건을 발생시킨데 대하여 전적인 책임을 지고 즉시 사죄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축구협회는 언제나 친선과 평화를 사명으로 하는 국제축구련맹과 스포츠의 이념에 충실할 것이며 이번 사건을 발생시킨 남조선당국과 불순세력들을 다시 한번 준렬히 단죄하며 그들의 차후행동을 주시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난 얘기지만 후안무치(厚顔無恥)! 아니 인면수심(人面獸心)이었다는 기억!

 

 

 

 

2019년 10월 15일 오후 5시 30분! 1990년 10월 평양에서 열린 ‘통일축구’ 친선경기 이후 29년 만에 남북 축구 대결이 벌어젔습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남자축구 대표팀은 북한 평양의 김일성경기장에서 북한과 2022년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H조 3차전을 치뤘는데, 북한의 비협조로 중계·응원단·취재진이 없는 3무(無)로 상태로 ‘외로운 방북 원정’을 했습니다.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경기 소식은 대한축구협회가 출입 언론사와 자체 SNS를 통해 전했고, 아시아축구연맹, AFC 경기감독관을 통해 말레이시아의 AFC 본부를 거쳐 경기 내용을 전달받는 등 꽤 복잡한 방법으로 소식을 전했습니다. 국가대표팀 경기를 TV중계 없이 인터넷 문자중계로! 경기 결과는 대한한국, 29년만의 북한 원정서 득점 없이 무승부 기록! 누이 좋고 매부 좋고?

 

한반도의 축구는 남북분단 이전에도 서울과 평양을 잇는 메신저 역할을 톡톡히 했습니다. 지난 1929년부터 1946년까지 열린 경평전(京平戰), 즉 경성·평양축구대항전이 있었습니다. 당시 경기가 있는 날이면 1만~2만 명에 이르는 관중이 축구장으로 몰려들고, 경성과 평양을 오가는 기차는 응원 인파로 만석을 이뤘다고 합니다. 그러나 열기가 지나친 나머지 승부에 불복하며 양측이 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1946년 이후 대회가 중단된 경평전의 총 전적은 10승7무6패로 평양이 우위! 2018년 남북 정상들이 처음으로 판문점 남측 평화의집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을 했는데...축구 한 경기도 평화롭게 열리지 않는 한반도는? 남북 위정자(爲政者)들은 지금 뭐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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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논설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이용웅 기자 dprkcultur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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