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오시아 쁘아종 대표/가수, 신인가수의 데뷔 무대 ‘쁘아종’

풍려한 음색의 향연을 펼치다
기사입력 2019.10.09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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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가수의 데뷔 무대 ‘쁘아종’

  

[선데이뉴스신문=이창렬 기자]70~80년대 통기타 가수 송창식, 윤형주 하면 그 시대의 등용문, 추억의 ‘쎄시봉’이 떠오른다.

그 뒤를 이어 DJ 이종환씨가 운영하던 음악다방 ‘쉘부르’를 통해 신인 가수들이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떨치던 시절도 있었다.

 

80년대 후반 대학가를 중심으로 민중가요나 올드팝의 열풍이 불어 닥쳤고 30여 년이 지난 지금은 미디어의 발달과 음악 산업의 글로벌화로 아이돌 댄스가수들이 주축이 된 K-pop 이 거대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추세이다. 이렇듯 K-pop의 위력은 문화예술을 기반으로 한 경제기업 및 음반시장에 많은 긍정적 변화와 자극을 가져왔고 앞으로 계속 진화될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오랜 세월을 사이좋게 공존해 온 아날로그와 디지털 문명이지만 공연계를 세밀히 살펴보면 어쿠스틱 음악과 아이돌 그룹 신드롬이 첨예한 수직구조를 이루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현란한 댄스그룹 아이돌을 추앙하는 팬덤(fandom)에 비해 기성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팬 층은 배제되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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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아 쁘아종 대표/가수

 저절로 몸이 그루브를 타게 만드는 재즈선율과 감미로운 올드팝으로 감동을 주는 무대는 과연 어디에 잔존해 있는 것일까? 이러한 실정에도 굴하지 않고 가수 오시아가 자신의 라이브 카페에서 7080 유행하던 음악을 피아노 건반에 오롯이 담아내고 있다고 하여 그녀가 있는 카페를 찾아가 보았다.

  

가수 오시아는 올드팝 부문에 있어서 다수 수상하였고 인천 TBN(한국교통방송) ‘오시아의 팝스토리’, 부산 TBN ‘낭만이 있는곳에’, 마포FM ‘오시아의 복고복고’, 국방FM ‘오늘도 좋은 날’ 등 이 외에도 여러 라디오 방송사의 고정 출연을 통해 팝송을 소개하고 라이브를 한 바 있는데 올드팝을 접하게 된 계기와 성장과정, 또 앞으로의 포부를 들어 보았다. 

 

▲ 라이브 카페 운영에 가수활동까지 하게 된 계기는?  
“2009년에 창업해서 10년째 라이브 카페를 운영해 오고 있는데요, 음악이 좋고 사람이 좋아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더군요. 이곳(청담동)에서만 해도 여러 번 이전 했어요. 누수 피해 때문에 옮기기도 했고 월세를 단 2개월 밀렸다고 명도를 당해 쫓겨나는 신세가 된 적도 있었죠.

 

눈앞이 캄캄했지만 하루도 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템페스트 장계현 선배님의 카페에 취직을 하여 노래를 하며 재기를 도모하던 중에 우연히 동아방송 최초 DJ 최동욱 선생님께 발탁이 되었어요. 되돌아보면 전화위복이었던 것 같아요. 그 후 라디오서울코리아 5주년 개국기념 공개방송에 초대되어 가수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고전끝에 어렵게 대출을 받아 가게를 다시 얻었고 그때부터 카페 운영과 가수활동을 겸업하게 되었죠.”

 

▲ 그럼에도 요즘 같은 불경기에 굳이 조용한 청담동에 개업을 한 이유는?
유동인구가 많은 동네는 상대적으로 권리금이 센 곳이 많아요. 그런데 이곳은 발품을 팔다보면 은근히 공실을 발견할 수 있죠. 빈 공간을 찾아 시설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인부들을 구해 인테리어 디자인을 직접 했는데 2개월간 공사 하면서 고생한 만큼 이 공간에 대한 애착이 큽니다. 하지만 경기침체로 불황을 겪는 라이브 카페들이 속출하고 있는 요즘 저도 예외는 아니에요.

 

여기가 고즈넉한 주택가라서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간판까지 눈에 잘 띄지도 않으니 자연히 외부 손님은 기대하기 어려워요. 그래도 음악을 좋아하는 단골들의 소개로 손님들이 알음알음 찾아 주시고 저와 6년 동안 동고동락한 연주자 후배들이 공연 외 시간에는 자잘한 일손도 거들어 주는 덕분에 꾸준히 유지는 되고 있습니다.

 

▲ 성장 배경은?
그 옛날, 빨래를 널으시면서 ‘탑튠쇼’ 시그널 뮤직 Pipeline을 듣고 시간을 감지하실 정도로 늘 라디오에 귀를 귀울이셨다는 어머니 영향 때문에 자연히 음악이 제 생활 속에 스며들었던 것 같아요. 저는 늘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어요. 조카들을 양육해야 되는 상황이었고 중병으로 누워 지내시던 아버지의 병수발에 거듭되는 수술비 마련을 위해 대학 휴학을 반복하다가 결국 학업도 중단해야 했죠.

 

그러던 중 운 좋게 재즈계의 거장 이판근 선생님을 만나 사사했고 불혹이 넘은 나이, 일과 학업을 병행하여 재도전한 결과 예술경영학사 학위를 취득하는 만학의 꿈도 이루어 냈답니다. 아버지를 간병하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독학으로 대입고시를 패스하신 어머니의 끊임없는 학구열과 독려가 자양분이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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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중가요나 트롯이 아닌 올드팝 분야를 선택한 이유는?
팝송이라는 장르가 듣기는 좋아도 원곡을 소화해 내긴 어렵기에 선택 보다는 도전이 되는 일이었어요. 옛날에는 우리가 의지와는 무관하게 라디오에서 디제잉 하는 곡을 들으며 지냈잖아요. 귀에 착 감기는 올드팝 멜로디에 반해 독음을 따서 노래하는 일은 다반사였죠. 사실 우리나라 말도 모르고 케이 팝(K-pop)을 따라 부르는 외국인들처럼 말이예요.  호텔 로비라운지에서 노래를 하던 제 발음이 서툴렀는지 서서 노려보던 외국인 모습을 떠올리면 지금도 낯이 화끈거려요.(웃음) 함께 저와 로테이션(rotation)하던 필리핀 듀엣은 저 혼자 받는 급여보다 반이나 적었지만 그들은 영어가 제 2 모국어라 할만큼 노래를 이해하고 부르니까 너무 부럽더라고요. 

 

그때부터 좋아하는 장르니까 제대로 파야겠다는 오기가 생겼고 일과 병행하며 원격으로 실용영어를 배웠고 틈틈이 발음과 가사 해석을 하며 손님들 신청곡 위주로 연습했죠. 옛날부터 손님이 써주신 신청곡 메모지는 하나도 안 버리고 지금도 간직하고 있는데 사람들의 노래 선호도 파악과 복습에 도움이 돼요.

  

‘올드팝 가수’라는 수식어가 무게감과 책임감으로 다가왔지만 맛있는 요리의 레시피를 궁금해 하듯 부르는 노랫말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고 부르면 즐거움이 더 커진다는 걸 깨달았고 뜻을 앎으로 감정을 더 잘 실을 수 있게 되었어요.

 

▲ ‘쁘아종’을 찾는 고객층의 연령대는?

제가 주로 올드팝송 옛 가요 위주로 연주하고 신청곡을 받다 보니 아무래도 젊은 세대보다는 70,8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중장년층에게 더 호응을 얻는 편입니다. 20대 30대에도 귀가 예민한 마니아층이 있는데 꽤 오래된 노래를 신청하기도 해요.

  

▲ 올드팝을 하게 된 계기와 과정은?
팝스 다이알 DJ 김광한 선생님이 선물해 주신 그분의 저서가 진로를 굳히는데 결정적인 도움이 됐어요. 팝스타들의 숨겨진 뒷 이야기‘팝스 비화’란 책인데 아주 흥미진진해서 책이 너덜거려질 정도로 읽고 또 읽었거든요. 책이 낡아져서 못쓰게 돼 어느 날 만나 뵙고 한 권 더 주십사 부탁드렸어요.

 

흔쾌히 승낙하시더니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도보로 왕복 30분이나 걸리는 사무실로 가셔서 새 책을 다시 갖다 주셨어요. 그때 받았던 감동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 신인 뮤지션들의 후진양성에도 힘쓴다고 하던데?
“그건 너무 과장된 표현이네요. 저와 함께 공연하는 뮤지션들은 이미 실용음악을 전공한 재원들이에요. ‘쁘아종’에는 파트타임으로 출연하여 공연 하면서 낮에는 작곡, 재즈 피아노를 레슨하고 보컬 트레이닝을 하죠. 그런데 자신들의 타이틀 곡이 수록된 앨범을 발표하고도 K-pop 아이돌 대세에 밀려 대중매체의 음악방송에 출연할 기회는 쉽게 닿지 않더군요. 처음에는 단지 노래를 부르고 싶은 신예들에게 수시로 무대에 오를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고 싶었지만 이제는 ‘쁘아종’ 이라는 라이브 무대에서 실력 있는 신인 뮤지션들이 대중에게 많이 알려질 수 있도록 인터넷을 통한 방송도 시도해 볼 계획입니다. 그건 제가 혼자서 추진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라서 여러 문화예술계통 전문가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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쁘아종 출연 가수

 ▲ 라이브 카페 무대에 대한 운영 마인드 및 앞으로의 포부가 있다면?
“정겨운 추억의 음악을 연주하던 7080 미사리 라이브 카페 촌이 아쉽게도 하나 둘씩 사라지고, 호텔 로비라운지에서 흘러나오던 라이브 무대가 서서히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씁쓸한 현실마저 마주하게 됩니다.
 

  

여러모로 많이 힘든 시기인데요. ‘쁘아종’에서 추억의 올드팝을 그리워 하는 손님들께 지친 심신을 음악으로 치유하는 편안함을 선사하고 싶어요. 신인 뮤지션들에게는 예능프로에서 비쳐지는 가수들 못지않게 라이브 무대에서 방송계로 활동을 넓혀 대중들에게 알려지고 신예로서 방점을 찍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음악쟁이는 어떠한 환경에 처하든 결국은 쟁이의 삶을 살게 되는 것 같아요. 이왕이면 술과 요리 생음악을 모두 흡족하게 즐길 수 있는 문화공간이 다시 생겨나서 목표를 향해 정진하는 음악쟁이들과 무대가 있는 곳이면 어디에서든 함께 상생했으면 하는 바램이에요.”

 

음악은 가난한 자나 부유한 자나 누구에게나 즐거움과 희망을 주며 때로는 한풀이의 도구이기도 하다. 그래서 새로운 놀이문화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7080 세대들의 목마름을 해소해줄 음악다방, 라이브 카페가 다시 곳곳에 소생하길 바란다.

 

앞으로 올드팝 가수들이 활동할 무대와 지원책 또한 많아져서 다양한 스타일의 올드팝과 재즈, 블루스 향기가 잔잔히 울려 퍼지는 거리를 걸어보길 기대한다.

[이창열 기자 leechy11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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